<음식과 사람> 8월호

[음식과 사람 2017-8 P.86 Food & Ingredient]

 

 

더운 여름, 밥을 물에 말아 장아찌 한 조각 올리면 잃었던 입맛을 찾을 수 있다. 짭조름하면서 아삭거리는 장아찌는 여름철 밥도둑이다. 더운 여름에 불 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장아찌만의 매력이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음식문화에서 개운한 밑반찬 구실을 하며 주부들의 반찬 걱정을 덜어주는 효자 음식이기도 하다.

 

editor 강보라

 

장아찌는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소금, 식초, 젓갈 등을 이용해 채소를 절여 만드는 저장식품이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친근한 반찬으로 철마다 담그는 종류가 다르다. 장아찌는 보통 제철에 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꾸덕꾸덕하게 말려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식초 등에 넣어 오랫동안 저장해뒀다가 먹는다. 채소뿐만 아니라 육류나 어류도 익히거나 말려서 된장이나 막장에 넣기도 한다.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해를 바꾸어 저장하는 우리 고유의 저장식품으로 1년 정도 지나야 제대로 된 맛이 나기 때문에 철마다 비축하는 것이 일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고 지역과 풍토적 다양성을 갖춰 저장식품이 발달할 수 있었다.

장아찌는 저장 방법 중 하나로 채소가 나오지 않는 겨울철에 채소를 먹기 위한 방편이었다. 기온의 차이가 크고 제철에 생산되는 산물이 다른 자연환경에서 채소를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조상들의 지혜였다.

우리 조상들은 금세 무르고 변하는 식재료를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소금과 간장 등에 담가 절여두었다. 그렇게 하면 심심하던 식재료들이 특유의 맛을 냈고, 적은 양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밥도둑으로 변한다. 짭조름하며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재료가 가진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장아찌의 매력이다.

 

채소의 무한 변신! 시간이 빚어낸 사계절 깊은 맛

- 계절의 변화를 담아낸 지혜로운 절임음식

우리나라는 대륙성기후와 해양성기후가 공존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1년 열두 달 산출되는 채소가 다른 만큼 그 특성에 맞는 음식이 발달했다. 겨울이 길고 추워서 그때는 채소가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제철 채소가 흔할 때 미리 준비해 부패와 변질을 막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만든 밑반찬이 장아찌다.

또한 계절에 따라 기온 차가 심해서 채소가 많이 나는 계절에 채소를 저장하고 가공하는 것은 채소를 끊이지 않게 공급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나아가 제철을 놓치지 않고 장아찌 등 밑반찬을 준비하는 것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주부의 소임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덕분에 밥상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가뭄, 홍수 등의 천재지변과 전쟁 때문에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어머니들에게 가족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큰 책무 중 하나였다.

먹여야 할 가족은 많고 먹을거리는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곡식 한 알, 풀 한 포기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채소는 뿌리부터 열매, 줄기, 잎, 씨앗까지 가능하면 버리지 않고 모두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과적으로 우리 음식문화가 발전하는 데 매우 큰 공헌을 했다. 장아찌는 그러한 문화적 특징이 반영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아찌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재료의 맛을 가장 잘 지키면서 익히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특히 장(醬) 속에는 부패균이 번식하지 않는 데다 장 성분이 채소와 함께 숙성되기 때문에 독특한 맛이 난다. 그중에서도 초에 절인 장아찌는 살균력이 강해 소금의 농도가 낮아도 방부 작용을 하고 식욕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절임액은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되는데, 짭짤한 장류와 식초는 저장성을 높이고 맛의 특성을 결정한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 달아난 입맛을 찾아드립니다!

- 아삭아삭 짭조름~ 사계절 사랑받는 밥상 위의 감초

장아찌 형태의 절임음식을 먹은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당시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에 대한 기술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부터 절임음식이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아찌에 대한 기록이 처음 선보인 것은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이다.

이규보는 이 시문집에 “좋은 장을 얻어 무를 채우니 여름철에 좋고 소금에 절인 것은 겨울에 대비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때 김치를 의미하는 채(菜)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등장해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절임음식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상당히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장아찌와 김치가 완전히 분리돼 있지만, 조선 전기에 나온 조리서를 보면 김치도 장아찌의 일부였다. 장아찌와 김치가 확실히 구분돼 발달한 것은 고추와 마늘 양념이 일반화된 조선 중기 이후부터다. 소금으로 시작된 절임 방식이 간장과 된장으로 발전했고, 고추장이 대중화되는 19세기 이후 고추장 장아찌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조기로 유명했던 전남 영광에서는 고추장에 굴비를 박아넣은 고추장 굴비가 부자들의 밥상이나 한정식 상에 올라왔다. 여름에 고추장 굴비를 반찬 삼아 찬물에 밥 말아먹는 별미를 즐기기 위해 영광에서는 이른 봄에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를 고추장에 넣었다. 이때 대가리와 가시, 껍질을 제거한 살을 7, 8개의 조각으로 나눠 5, 6개월 숙성시킨 뒤에야 꺼내 먹었다.

감칠맛이 풍부하고 매콤한 고추장 굴비는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데 제격이었다. 굴비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생선이나 감칠맛 나는 해조류를 넣으면 재료의 맛은 물론이고 고추장의 맛도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날로 먹는 채소라면 무엇이든 장아찌의 재료가 될 수 있지만, 수분이 많고 섬유소가 적은 것은 적합하지 않다. 장아찌의 재료로 많이 쓰이는 것은 무, 오이, 풋고추, 마늘, 마늘종, 깻잎, 더덕, 도라지, 고춧잎, 무말랭이, 표고버섯 등이다. 채소 외에도 김·미역·다시마 등 해초, 굴비·북어 등의 해산물, 여기에 두부와 도토리묵도 재료로 쓰인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특히 밑반찬이 많은데, 생산되는 채소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와 충청도의 산간 지방에서는 산나물을 재료로 한 장아찌를 많이 만들어 먹는다. 특별한 장아찌로는 감이 많이 나는 고장에서 풋감을 고추장에 박아 만드는 감장아찌, 더덕이 많이 나는 지방에서 만들어 먹는 더덕장아찌 등을 별미로 꼽을 수 있다. 두부의 물기를 제거한 뒤 고추장에 박아두었다가 먹는 평안도 지역의 두부장아찌도 있다.

 

고혈압과 위암의 주범 vs 오히려 나트륨 섭취 줄여줘

- 고염분 음식의 대명사, 장아찌의 나트륨 논란

장아찌가 요즘 수난을 겪고 있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짠 음식이기 때문이다. 짜게 먹는 것이 고혈압과 위암의 발병 원인으로 떠오르면서 장아찌가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학자들은 우리의 전통 음식인 국과 밑반찬, 김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성인의 하루 소금 섭취량은 6g이다. 최대 섭취량도 10g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금 섭취량은 15~20g 정도로 권장치의 두세 배가 되는 양이다. 소금이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소금의 나트륨 성분 때문이다. 소금이 인체에서 분해되면 혈관 벽에 있는 나트륨을 증가시켜서 혈관 벽이 압력을 받아 혈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아찌를 만들 때 사용되는 천일염은 정제염보다 나트륨 성분이 낮다.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는 천일염은 맛도 좋을 뿐 아니라 장아찌가 발효되면서 나오는 자연의 감칠맛 성분으로 나트륨 섭취를 오히려 20% 정도 낮출 수 있다. 이것은 고염분 음식으로 지목받는 배추김치가 고혈압 발병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연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김치에 함유된 유산균이 장내 세균층을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고 원재료인 채소에 들어 있는 칼륨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때문에 김치의 염도가 높더라도 고혈압 발병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아찌가 고염분 음식의 대명사로 인식되지만, 요즘은 냉장시설의 발달로 예전처럼 고염도의 장아찌를 담그지 않아도 된다. 식초 등 다른 대체제로 염도를 낮출 수도 있다. 많은 양을 만들어 오래 두고 먹었던 과거와 달리 소량으로 조금씩 만들어 먹으면 과도한 염분 섭취를 막을 수 있다. 소금은 이집트 벽화에서 물고기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천 년 동안 사용돼온 최고의 방부제다. 생채소 요리라는 뜻으로 쓰이는 샐러드(Salad)도 ‘소금에 절인(Salted)’에서 유래된 말이다.

옛사람들은 단순히 채소가 시들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금에 절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행동은 놀라웠다. 채소를 소금물에 넣어 저장할 경우 2% 이하의 염분에서는 여러 가지 잡균의 번식이 일어나지만, 3%의 염분에서는 대부분의 잡균이 억제되고, 5% 이상의 소금물에서는 모든 부패균이 억제된다.

또한 소금을 조직 내로 침투시켜 필요한 미생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살아남을 수 없게 한다. 소금은 세균 번식을 막는 가장 위생적이고 안전한 양념 중 하나인 것이다. 또 채소를 소금물에 절이면 채소의 수분이 탈수되며 원형질이 분리돼 다른 양념이 채소의 조직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게 된다. 요리를 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소금인 것이다.

소금이 건강의 적으로 인식되지만, 소금은 체내에서 음식물을 분해하고 노폐물을 배설하는 신진대사를 주도한다. 신진대사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혈액이 산성화되고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을 일으킨다. 소금은 인체의 혈관을 정화시키고 적혈구의 생성을 돕는 역할도 한다. 적혈구의 주성분인 철분을 소화시키려면 위염산이 필요하다.

위염산은 소금 속의 염소이온이 만들기 때문에 소금이 부족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적혈구의 생성을 막아 빈혈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염분은 혈관 내의 광물질을 제거해 동맥경화를 막는 역할도 한다. 위암과 동맥경화의 원인이라는 소금이 동맥경화를 막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맛이면 맛, 영양이면 영양~ 알고 보면 팔방미인

- 저장음식을 넘어 별미음식에 도전하다

냉장시설과 하우스 재배로 계절과 상관없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음식에 대한 기호도 달라져 장아찌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운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리는 데 장아찌만 한 것도 없다. 장아찌는 이제 보관이라는 실용성을 넘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별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제대로 알고 보면 장아찌는 영양 성분이 풍부한 음식이다. 장아찌로 숙성되는 과정에서 원재료의 각종 유기산과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진다. 비타민과 무기질 역시 풍부하다. <동의보감>에도 식품 발효 과정에서 약재 성분이 우리 몸에 작용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해 몸에 이롭게 작용한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숙성 중에 만들어진 유리아미노산은 몸에 쉽게 흡수돼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작용을 한다. 장아찌의 이 같은 효능 때문인지 최근에는 염분을 줄이고 제철 채소로 만들어 부담 없이 장아찌 특유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장 좋은 재료를 가장 담백하게 조리하는 것이 장아찌이기도 하다.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식초 등의 장류 외에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본래 재료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장아찌다. 또 불에 익히지 않는 음식이다. 더러 간장을 달여 붓기도 하지만 직접 불에 올려놓고 볶거나 조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장아찌는 생식이기도 하다. 생식은 각종 성인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쉬운 것 같아 보여도 직접 만들려고 하면 어려운 것이 장아찌다. 그만큼 깊은 내공이 필요한 음식이기도 하다. 위생을 위해 지켜야 할 유의점도 있다. 먼저 장아찌를 담그기 전에는 재료를 충분히 씻어야 보관할 때 유해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장아찌를 담글 재료는 일단 절이거나 말려서 수분 함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수분이 없어야 곰팡이가 피어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장아찌 만들기는 재료를 손질해 물기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재료에 따라 수분 함량이 적은 것은 담기 전에 전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장이나 초에 절이기도 한다. 맛이 밴 뒤에 꺼내 양념해 저장식품으로 이용하면 된다. 간장 장아찌를 담그려면 간장에 식초, 설탕, 생강, 마늘, 마른 고추, 물엿 등을 넣고 일단 끓여서 식혀 부어야 맛있다.

재료를 용기에 차곡차곡 담은 뒤 무거운 것으로 누르고 달인 조림장을 부어 공기 중에 내용물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물이 담기지 않은 부분에는 하얀 곰팡이가 끼는데, 이렇게 되면 장아찌의 맛이 떨어진다.

장아찌는 생채소를 장에 그대로 절이기 때문에 가열로 말미암아 비타민이 손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더구나 생으로 먹을 때보다 장아찌로 담가 먹으면 비타민B 함량이 증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장에 담가 숙성시켜 먹는 만큼 염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양을 담기보다는 먹을 만큼만 꺼내어 삼삼하게 양념해 먹어야 과도한 염분 섭취를 막을 수 있다.

특히 간장이나 젓국으로 담글 경우 염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데, 이럴 때 다시마 육수를 내어 섞으면 짠맛을 조절하면서 감칠맛과 영양도 보충할 수 있다.

장아찌는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이며, 발전 가능성이 높은 식문화이다. 계절을 담아내는 넓은 포용력과 시간이 만든 깊은 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장아찌는 슬로푸드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음식이면서 빠르게 상을 차릴 수 있게 도와주는 패스트푸드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 장아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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