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0월호

[음식과 사람 2017-10 P.86 Food & Ingredient]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

 

▲ 이미지 = Pixabay


우리는 뜻밖에 좋은 물건을 얻거나 행운을 만났을 때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왔다’고 말한다. 호박의 이로움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호박의 열매는 우리 식탁에서 친숙하게 사용되는 식재료이다. 여기에 꽃과 잎, 씨앗에서 기름까지 약용으로 활용된다. 호박은 그만큼 쓰임과 효능이 뛰어나다.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유용한 작물이다.

 

editor. 강보라

 

호박은 쓸모가 많은 채소다. 꽃은 전을 부쳐 먹고, 연한 이파리는 데쳐 쌈으로, 애호박은 전과 나물로 먹는다. 늙은 호박은 엿이나 죽으로, 조선호박으로 불리는 재래 호박은 가을볕에 말렸다가 나물로 먹는다. 우리가 먹는 호박은 따는 시기에 따라 애호박, 단호박, 늙은 호박 등으로 나뉜다. 여름에는 애호박과 풋호박이 가장 맛있고, 늙은 호박과 단호박은 가을에 제 맛을 낸다.

호박은 우리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작물이기도 하다.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놀부의 못된 짓 중의 하나가 ‘호박에 말뚝 박기’였고, 내숭을 떨면서 다른 일을 할 때 ‘뒤로 호박씨 깐다’고 말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라는 말은 노력해도 근본을 바꿀 수 없다는 비유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 정서를 대변하는 호박은 효능 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동의보감>에는 ‘호박은 맛이 달며 독이 없으면서 오장을 편하게 하고, 산후 혈전통을 낫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민간요법에서는 당뇨, 비만, 신장과 위장 질환이 있을 때 호박죽과 호박즙을 먹게 한다.

기침과 천식이 있을 때는 호박 식혜를 마시고, 신장과 방광 기능이 떨어졌을 때는 늙은 호박을 대추, 꿀 등과 함께 푹 고아서 먹는다. 사람의 외모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호박에 빗대기도 하는데, 호박의 효능을 생각하면 나쁘게만 해석할 이유가 없다.

 

세계인의 사랑을 ‘넝쿨째’ 받는 호박

- 맛과 영양은 기본이고 다산·풍작·부의 상징으로

호박은 박과에 속하는 작물로 중앙·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축제나 행사의 주인공으로 사용됐고, 중국에서도 다산과 풍작, 부의 상징 등으로 여겨져왔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일본과 중국을 통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남만(南蠻)에서 전래됐다는 의미로 남과(南瓜), 오랑캐로부터 전래된 박과 유사하다고 해서 호박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호박은 15가지 종류가 있는데 지역에 따라 관상용으로 쓰이는 곳도 있다. 호박은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는데, 고온다습한 지대에 적응해온 동양계 호박과 페루, 칠레 북부 등 고랭지의 건조지대에 적응한 서양계 호박, 멕시코 북부와 미국 서부를 원산지로 하고 있는 페포계 호박의 세 종류로 크게 분류한다.

그중 우리나라에서는 동양계 호박이 주로 재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늙은 호박이 있다. 늙은 호박은 여름에 수확하지 않은 것을 가을까지 그대로 익힌 것이다. 가을볕으로 더 익혀서 가을의 보약을 만든 셈이다. 요즘은 서양 명절인 할로윈데이의 장식용 램프 재료로 유명하지만, 배고팠던 시절에는 구황작물 역할을 톡톡히 했던 식재료다.

호박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승려들이 먹는 채소라는 뜻의 ‘승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채소였다. 다른 채소보다 기후에 잘 적응하고 가뭄과 병충해에도 강해 구황작물의 미덕을 고루 갖췄다 할 수 있다. 잘 익은 호박을 겨우내 다락방 시렁에 올려놓고 호박범벅이나 떡에 넣어 먹었다. 그야말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고마운 식물인 것이다.

호박은 열매채소류에 속하지만 조리법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요리에 이용된다. 우리나라는 애호박과 늙은 호박, 잎과 순, 꽃을 두루 즐겨 먹는다. 지중해에서는 올리브 오일에 볶아 향신채소를 얹어 먹고, 아랍에서는 호박 속을 비운 뒤 양념한 고기와 여러 재료를 넣고 익혀 먹는다. 멕시코에서는 호박꽃으로 요리를 해왔다. 여러 품종 가운데서도 주키니 호박의 꽃을 주로 사용하는데, 호박꽃의 부드러운 맛이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호박으로 수프, 스튜 등을 만들었는데, 호박 수프는 이미 미식가들의 고전이 됐고, 호박 스튜는 아프리카에서 카리브해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역에서 즐겨 먹고 있다. 추수감사절에 먹는 명절 음식으로는 호박 파이가 손꼽히는데, 당밀과 설탕, 스파이스를 곁들여 낸다. 식감과 맛이 순한 호박은 이처럼 모든 요리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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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과 늙은 호박의 비밀

- 팔팔한 ‘애호박’ vs 영양 응축 ‘늙은 호박’

국내에서 주로 재배하는 애호박과 늙은 호박은 성숙 정도에 따라 나뉜다. 호박은 대개 여름에 많이 나는데, 대표적인 여름 호박인 애호박은 뙤약볕 아래에서도 말라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애호박은 부침과 찌개, 볶음, 무침, 조림, 죽 등 다양한 요리에서 주재료 맛이 나며 비타민A와 C가 풍부하고 소화가 잘돼 이유식과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다.

애호박에는 펙틴이라는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는데, 이것이 체내 불순물을 배출시키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펙틴은 여름철 약해진 신장 기능을 강화하고 변비도 예방해준다. 애호박의 비타민A 역시 체내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비타민A는 지용성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흡수를 위해서는 호박전이나 호박나물처럼 기름에 볶아 먹는 것이 좋다.

겉이 단단하고 노랗고 달콤한 맛을 가진 청둥호박은 늙은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맷돌처럼 둥글납작하다고 해서 맷돌호박, 애호박이나 풋호박에 비해 성숙했다는 뜻에서 숙과용 호박이라고도 부른다. 늙은 호박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붙은 이름이다. 늙은 호박은 밭에서 익혔다가 쨍쨍한 가을볕이 들면 수확한다. 보통 8~10월에 수확이 가능하지만 숙성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영양소와 효능을 갖는다고 알려져 주로 늦가을에 수확한다. 호박의 영양분이 농익도록 기다렸다가 늦가을에야 수확을 하는 것이다.

과거 선조들은 동짓날 늙은 호박을 삶아 먹으면 1년 내내 무병하다고 여겨 가을걷이를 끝낸 뒤 호박죽을 쑤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곳간에 쟁여둔 늙은 호박이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최고의 식품이었을 것이다.

늙은 호박은 겉이 단단하기 때문에 저장성이 좋고 과육은 물론 어린 덩굴과 잎부터 씨까지 모두 먹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전통적으로 호박죽, 호박전, 호박고지, 호박범벅 등의 형태로 활용돼왔으며 요즘에는 찌개, 수프 등의 재료로도 이용된다. 소화 흡수가 매우 잘돼 위장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으며, 식이섬유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변비 예방과 다이어트에도 좋다.

호박을 이용한 대표적인 보양식은 호박죽이다. 늙은 호박의 주성분은 당질로, 채소 중에서 녹말이 가장 풍부하다. 늙은 호박은 정장 작용과 장내 바이러스 억제, 변비 개선 등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적합한 채소다.

<동의보감>에서는 부기가 있을 때 호박을 먹으라고 했는데, 호박은 천연 이뇨제로 산모의 부기를 빼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호박죽은 이처럼 체력 회복, 빈혈 예방, 이뇨 작용과 체내의 노폐물 배출에도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열을 가해 조리를 해도 그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아 다양한 조리 방식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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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대접받고 있지만 진가를 알아야 할 식품

- 알수록 놀라운 호박잎, 호박씨의 효능

여름철 호박잎쌈은 맛도 그만이지만 생것을 섭취해서 올 수 있는 채독(菜毒)을 예방할 수 있었다. 민간요법에서는 회충약 대용으로 호박잎을 말렸다가 가루로 내어 먹기도 했다. 호박잎에는 섬유질과 비타민, 플라보노이드가 많아서 몸 안에 쌓인 산화물질을 제거하고 항암 작용에도 효과가 있다.

이 밖에도 여름철 장항아리를 열어놓지 못할 때 호박잎으로 된장을 덮어놓으면 곰팡이 피는 것도 막아주고 구더기가 생기는 것도 방지해준다. 부엌살림에도 요긴하게 쓰였는데, 갈치를 손질할 때 호박잎의 뒷면으로 훑으면 은빛 비늘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가래가 동반된 감기에는 일부러 호박잎쌈을 먹어 가래를 없앴다.

민간요법으로 허리가 아프고 멍든 데 생호박잎을 찧어 붙였다. 놀랍게도 아프리카의 민간에서도 똑같이 행해지는 방식이다. 자메이카에서도 근육이 아프고 멍든 곳에 생호박잎을 찧어 발라서 부기와 통증을 다스리는 데 이용한다고 한다.

호박씨는 뉴욕타임스가 ‘푸대접받고 있지만 진가를 알아야 할 식품’으로 호박씨를 가장 먼저 소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작지만 영양소를 가득 품고 있는 호박씨는 조금만 먹어도 건강에 좋은 지방과 마그네슘을 섭취할 수 있다.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 스낵으로 권장되는 호박씨는 미네랄 중에서도 아연과 철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 가운데서도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비타민E가 풍부하다.

또한 에스트로겐 생성을 도와 호르몬이 신체 각 부분에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다. 호박씨는 혈관 근육을 키우는 효과가 있어 ‘혈관 트레이너’로도 불린다. 호박씨를 꾸준히 섭취하면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HDL)이 크게 증가하며 혈압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여기에 호박씨에 많이 들어 있는 레시틴은 두뇌에 영양을 공급해 피로 해소, 기억력 증대, 집중력 향상, 치매 예방 등의 효과를 나타낸다.

호박씨는 뇌 기능 활성화에도 기여해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호박씨를 깐다’는 속담이 뇌 기능 향상으로 두뇌 회전이 빨라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호박씨는 간 기능 강화에도 좋다. 이는 호박씨에 비타민B, C 등 영양소가 풍부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B 복합체는 탄수화물, 지방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양 성분이다. 지방이 간에 쌓이는 것을 예방하고, 간의 해독 능력을 강화해준다.

호박씨에서 뽑아낸 호박씨 오일 역시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된 우수한 식물성 기름으로 혈관 보호와 질병 예방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박씨 오일은 혈관 근육인 평활근을 두껍게 해주는 마그네슘 성분이 535mg으로 다른 씨앗에 비해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박씨 오일은 특히 오스트리아인들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영토의 3분의 2가 알프스 산지로 이뤄진 척박한 땅에서도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호박을 꼽고 있다. 이 중에서 호박씨 오일을 직접 마시거나 요리에 사용하고, 얼굴에 마사지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호박씨에 함유된 비타민A가 피부 재생, 비타민C는 피부 미백에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호박씨엔 특히 오메가 3와 오메가 6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는데, 이것이 보습막을 형성해 촉촉하고 맑은 피부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들 성분은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손상된 피부를 재생시키고 탄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식품을 넘어선 천연 항암제, 호박

- 항산화·항암, 노화 방지, 성기능 개선까지… 식품이 아니라 보약!

호박은 과육의 색이 나타내듯 강력한 항산화물질인 카로티노이드 함량이 매우 높은 채소다. 진한 적황색이 특징인 카로티노이드는 베타카로틴, 루테인, 크산토필 등의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황색 채소는 폐암, 식도암, 위암, 방광암, 후두암의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호박의 녹색 혹은 노란색을 나타내는 베타카로틴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로 암 발생을 억제하는 데 그만큼 탁월하다.

이 때문에 황색 채소에 많이 들어 있는 카로틴의 섭취량이 적은 지역에서는 악성 종양의 발생 빈도가 높은 편이다. 보통 100g당 600μg 이상의 카로틴을 함유하는 채소를 녹황색 채소라고 하는데, 호박 이외에 당근, 시금치, 상추, 아스파라거스 등이 있다. 베타카로틴은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지방의 산화물 축적과 혈전 생성을 막아서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호박에 풍부한 셀레늄과 비타민E, 폴리페놀도 전립선암의 발생과 진행을 막아준다. 베타카로틴은 폐암 억제에도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흡연 경력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호박의 베타카로틴이 발암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무독화해 폐암 발병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녀노소 모두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호박은 비뇨기계 질환 중에서도 방광과 전립선, 성 기능 개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전립선암에 대한 억제 효과가 크다. 최근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의 증가와 식생활의 서구화, 운동 부족 등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전립선암은 동물성 지방의 과다한 섭취를 피하고 과일, 채소, 곡류를 충분히 섭취함으로써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

사실 호박은 오래전부터 방광 기능을 호전시키는 배뇨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 결과 밝혀진 사실은 호박의 폴리페놀 성분이 방광을 진정시킨다는 것이다. 폴리페놀의 피로갈롤이라는 성분이 방광의 과도한 수축을 억제하고 방광 안정제 구실을 해 배뇨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박에 풍부한 셀레늄과 아연도 남성호르몬 생성을 늘리고 정자의 활동력을 높인다. 비타민E는 역시 노화를 예방해주고 성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켜줌으로써 성 기능과 임신 능력 개선에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을 꼽아보기만 해도 호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제 천연 항암제인 호박을 우리 식탁으로 초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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