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2 P.65 Food Essay]

 

손님에게 팁! 까지 주는 음식점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동혁

 

일본 시코쿠 고치현에서 손님들이 왔다. 조선 두부가 어떤 사연으로 고치에 가서 그 지역 특산품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많이 도와주신 분들이다. 자주 오는 분들이라 어떤 식당으로 모실까 머리를 짜보다가 깜짝 메뉴를 떠올렸다. 그래서 모시고 간 곳이 ‘양꼬치집’이었다.

여자 손님들이었는데 고기 맛을 보기도 전에 ‘어머나’를 연발했다. 가느다란 꼬챙이가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면서 고기를 골고루 굽는 모양새가 재미있었나 보다. 단언하건대 일본에는 아직 양꼬치집이 없다. 고치시 도사야마다에서 ‘돈짱’이라는 이름으로 야키니쿠와 돼지전골을 파는 권옥희 씨도 자기가 아는 한 일본에 양꼬치집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이것 봐라. 양꼬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매우 폐쇄적인 나라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조선족이라는 좀 특수한 문제가 걸려 있긴 하지만 일본에 비해 우리의 대문이 더 활짝 열려 있다. 우리 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를 가진 분들도 많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어디서나 양꼬치 간판을 볼 수 있고, 어떤 곳은 아예 양꼬치 골목을 이루었다. 최근 3년 사이에 점포 수가 6배나 늘어났으며 연간 1만2000톤이나 양고기를 수입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러다가 양꼬치가 치킨을 압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치킨도 우리 고유 음식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사실 초창기에 양꼬치는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었다. 질기고 냄새 역하고 쯔란이라는 중국 향신료는 너무 강했다. 수요가 늘다 보니 그 질과 냄새가 개선됐다. 양(Lamb)은 12개월이 안 된 어린 녀석이 맛있다는데 예전엔 20개월이 넘은 늙은 양고기를 사다가 오래 냉동해두고 먹었다. 요즘은 기본이 20개월 미만의 양고기를 쓴다고 한다.

경기도 안산에 가서 친구들과 먹자골목에 들어섰는데, 애당초는 생선회를 겨냥했으나 날도 차고 마음 또한 어수선했으므로 “에라, 양꼬치나 구워보자” 이렇게 의견이 모아졌다. OO네 양꼬치집은 넓고 깨끗했다. 그리고 주인과 종업원이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당연히 연변 억양으로 주문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 이건 짜장면의 사회학을 닮아가는구나. 화교들의 독점사업이던 짜장면집을 한국 사람들이 하나, 둘 꿰차더니 이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은 몇 개 남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스시집을 찾아갔는데 간판도 ‘사쿠라식당(Sakura Restaurant)’이어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한국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산의 양꼬치집은 기대 이상이었다. 양고기의 육질이 이렇게 좋아졌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마파두부까지 주문해서 맛보았는데 짭짤한 국물이 흥건히 남았기에 밥이나 소면을 넣어서 비벼먹고 싶다 했더니 라면을 삶아서 넣어주는 것이었다. 라면 사리값은 받지도 않겠다면서. ‘이제, 이 집은 단골 한 팀 붙잡은 거야.’

여기에다 손님에게 팁까지 안겨주었다. 로또 한 장! 우리 모두는 탄성을 질렀다. 로또는 그날 계산을 떠맡은 내가 소지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로또를 꺼냈다. 그런데 번호를 맞춰보기도 전에 눈에 들어오는 문구. “당첨 시에는 당첨금의 ‘50분의 1’을 당 업소에서만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50분의 1이라…,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어둠 속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야릇한 슬픔에 휘감겨 있었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