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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한결같은 굴 사랑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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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7  10: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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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18-12 Discovery]

 

그리스 신화에서 굴은 생명의 원천
연산군과 중국 사신이 입맛 다신 조선의 굴

 

   
▲ 이하 이미지 = PIXABAY

굴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인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식품이다. 굴을 생명의 원천 같은 음식이자 정력에 좋은 사랑의 묘약으로 여겼던 유럽의 굴 마니아들은 물론 우리 조상님들의 굴 사랑 또한 지극했다. 굴의 무엇이 그들을 사로잡았을까.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세계적으로 특별한 음식]

겨울엔 굴이 맛있다. 예컨대 김장 담그는 날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먹는 보쌈도 맛있지만, 겉절이에 굴 한 점 올려놓고 먹는 굴 보쌈도 별미다. 우리나라에선 굴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했는데 굴회에 석화구이, 굴밥, 굴국밥, 굴찜, 석화김치, 굴무침, 굴생채, 굴튀김, 굴전 그리고 어리굴젓까지 미처 다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우리만 굴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서양에서도 굴은 특별한 음식이다. 전통적으로 회를 안 먹지만 굴만큼은 날것으로 먹었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진정한 미식가는 생굴을 먹으며 바다의 맛을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서양인들의 굴 사랑도 만만치 않다. 

유럽의 굴 마니아들은 산지별로 굴을 골라 먹는다. 와인이 산지와 연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굴에도 빈티지가 있다고 하는데, 와인을 관리하고 추천하는 소믈리에가 있는 것처럼 서양엔 굴 소믈리에까지 있다.

입맛에 따라 선호가 갈리지만 굴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인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식품이다. 그런 만큼 굴에 대해 환상까지 품었다. 그중 하나가 굴이 정력에 좋은 강장식품이라는 믿음이다. 생명의 원천 같은 음식이어서 먹으면 힘이 솟고 정력에 좋은 사랑의 묘약이라고 믿었다. 이와 관련해 널리 퍼진 속설이 카사노바 이야기다. 얼마나 굴을 좋아했는지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생굴을 50개씩 먹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출중한 정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 유럽인들은 왜 콕 집어 굴이 카사노바 정력의 비결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카사노바 정력의 비결?]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팩트 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카사노바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굴을 먹었다는 사실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카사노바가 굴을 좋아했던 건 분명하다. 자서전 <내 인생 이야기(Story of my Life)>에 여인을 유혹할 때 먹었던 음식이 나오는데 여기에 굴 요리가 자주 등장한다. 

굴과 정력의 관계를 따질 때 카사노바가 굴을 먹고 정력이 세졌는지, 정력에 좋다고 믿었기에 굴 요리를 먹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급 귀족에 지나지 않았던 카사노바가 먹은 굴은 당시 다른 귀족과 상류층 인사들이 먹었던 굴의 양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18세기 그리고 그 이전 로마시대부터 유럽인은 사족을 쓰지 못할 정도로 굴을 좋아했다. 대표적 인물이 서기 69년에 단 8개월 동안 로마 황제를 지낸 아울루스 비텔리우스다. 로마시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비텔리우스가 황제로 있었던 기간 동안 끝없는 식욕을 채우고 독특한 미식을 만족시키기 위해 로마 화폐로 약 9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낭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2000년 전의 돈을 지금 화폐 단위로 환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대략 지금의 미화 9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니 우리 돈으로는 약 1000억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는 하루에 네 차례씩 파티를 열었다는데, 먹는 음식만 놓고 보면 지금 기준으로 사치스럽기는커녕 되레 엽기적이다. 꿩고기와 플라밍고, 공작새 고기를 즐겼고 각종 조류의 골수를 채소와 함께 끓인 ‘미네르바의 방패’라는 요리와 홍학의 혓바닥, 장어 내장 등이 알려진 메뉴다. 그나마 먹음직스러운 것은 영국에서 직접 조달했다는 신선한 굴인데 한 번에 100개씩 먹었다. 신선한 생굴을 먹기 위해 로마 병사들이 멀리 영국에서 로마까지 배를 타고 말을 달려 조달했다고 한다.

지금 눈으로 보면 굴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교통이 불편했던 1세기 로마시대에 영국의 굴은 같은 무게의 금값과 거의 맞먹었다고 하니 비텔리우스 황제의 식탁이 얼마나 초호화판이었는지 굴 이야기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의 굴 마니아들]

이렇게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던 굴은 로마 멸망 이후 중세 유럽에서 그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굴 열풍은 근대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때도 굴은 부자들이나 먹는 해산물이어서 유럽 역사에서 경제와 부의 중심이 이동할 때마다 굴 소비 지역도 따라서 달라졌다. 

17세기 유럽에서 네덜란드가 동양과의 무역으로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을 때 네덜란드에서 굴 소비가 엄청 늘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로 넘어오면서 프랑스가 루이 14세 때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 유럽에서 정치·군사적 중심지가 됐을 때 프랑스에서도 역시 굴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예컨대 “짐이 곧 국가다”라고 외친 프랑스의 절대군주, 태양왕 루이 14세도 굴 마니아였다. 굴을 엄청나게 좋아해 로마 황제처럼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까지 마차로 굴을 실어 날랐을 정도였고, 루이 14세를 초대했던 귀족의 요리사가 굴이 늦게 도착해 상하자 자살했다는 일화도 있다. 굴이 신선하지 못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데, 이 정도면 당시 사람들의 굴 사랑이 마니아를 넘어 거의 병적인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루이 14세뿐만 아니라 부르봉 왕가 왕족들은 대부분 엄청난 굴 애호가였다. 증손자인 루이 15세는 귀족들이 굴로 점심을 먹는 초대형 굴 그림을 주문해 베르사유 궁전 식당에 걸어놓고 식사 때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식욕을 돋웠을 정도였다. 이때 사람들은 굴 그림만 봐도 식욕이 솟구칠 정도였던 모양이다. 사실 문자로 남은 기록만 봐서는 로마나 유럽의 부자들이 앉은자리에서 굴을 몇백, 몇천 개씩 먹었다고 하면 그게 과장인지 아닌지 믿기 어려운데 바로크 시대와 로코코 시대 서양 그림에 보면 진짜 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는 장면이 많다. 

일례로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의 총사령관인 주노 원수 역시 굴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먹었다 하면 한 번에 300개씩 먹어치웠다는데 고대 로마시대가 됐건 근대 프랑스가 됐건 옛날 유럽 사람들은 왜 이렇게 미친 사람들처럼 굴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 까닭은 굴이 생명의 원천이고 정력제이며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굴이 사랑의 힘과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었고 카사노바 이야기처럼 근대, 나아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선 굴이 리비도(Libido)를 자극해 정력의 비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도대체 왜 이런 믿음이 생겼느냐는 것이다.

유럽에서 굴을 정력 내지 섹스와 연관시킨 이유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면, 비너스가 커다란 조개껍데기 위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긴 머리로 중요 부분을 가리고 서 있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비너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름이고, 그리스 신화에선 아프로디테인데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비너스, 즉 아프로디테는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 조개껍데기를 타고 모습을 드러내는데 ‘비너스의 탄생’에선 가리비(Scallop) 위에 서 있지만 고대의 많은 문헌에선 가리비가 아닌 굴(Oyster)에서 나온 것으로 적혀 있다. 굴(조개)을 잉태의 상징으로 봤던 것이다.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사랑의 미약, 최음제의 영어 단어 ‘Aphro disiac’도 아프로디테에서 유래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유럽에선 전통적으로 굴에 정력을 키워주고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일부에선 과학적으로 따졌을 때 과거엔 실제로 굴이 정력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네랄이나 비타민의 섭취가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던 고대엔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굴이 리비도를 자극하는 정력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굴 따는 어부 딸은 얼굴이 하얗다”]

유럽의 굴 사랑 역사를 소개했지만, 한국인의 굴 사랑 또한 고대 로마나 근대 프랑스 사람들 못지않게 유별났다. 우리말에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을 먹어치울 때, 그래서 일을 막힘없이 단숨에 처리할 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남양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 일대로 예전 남양도호부에 부임하는 원님들마다 이 지방 특산물인 굴을 씹지도 않고 훌훌 마셨다고 해서 생긴 속담이다. 

남양 원님들은 왜 굴을 씹지도 않고 급하게 먹었을까? 옛날엔 바닷가가 아니면 생굴 먹기가 쉽지 않아 굴이 그만큼 귀하기도 했겠고, 또 무엇보다도 남양만에서 나는 굴이 특별히 맛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에도 남양도호부의 특산물로 굴을 꼽았을 정도다. 그러니 사또로 남양에 부임하면 굴회부터 찾았던 것인데 “굴회 마시듯 한다”는 말이 원님의 탐욕을 흉보는 게 아니라, 생굴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듯 막힘없이 일처리를 잘한다는 뜻으로도 쓰였으니 남양 원님들은 일도 시원시원하게 잘했던 모양이다. 

남양 원님뿐 아니라 임금도 굴 맛에 빠지긴 마찬가지였다. 연산군은 산해진미에 탐닉했던 임금이다.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에 빠져 중국 가는 사신에게 아열대 과일인 여지를 구해오라고 독촉했고, 사슴 꼬리 맛에 반해 제주도 사슴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는데 굴도 무척이나 즐겨 먹었다. 무오사화를 일으킨 간신 유자광이 연산군 입맛에 아첨하려고 먼 함경도에서 굴을 따다 말에 싣고 달려왔다는 기록이 <연산군일기>에 보인다. 

조선 굴이 맛있기로는 멀리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중종 때인 1537년, 명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했다. 북경을 떠나 먼 길을 오면서 한양에 도착하면 맛있는 굴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왔던 모양이다. 환영 만찬에서 굴이 보이지 않자 못내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역관을 통해 “오는 도중 곳곳에서 식사 때마다 조금씩 굴을 제공하기에 한양에 가면 실컷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왔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굴이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접대를 담당한 조선 관리가 “바닷가 고을이 한양과 멀기 때문에 미처 도착하지 못해 지금 해당 고을에 재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종 때 중국 사신이 명나라 궁궐에서 쓸 해산물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조선에선 다양한 해산물을 준비했는데 여기에 굴젓도 세 항아리 포함시켰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전한다. 굴젓은 명나라 황제에게 보낼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니 예부터 우리나라에선 굴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발달했다. 중국 사신이 탐낸 굴젓 중에서도 으뜸인 어리굴젓도 그중 하나다. 어리굴젓의 유래에 대해선 두 가지 얘기가 전한다. 하나는 조선 초 무학대사가 먹어보고 너무 맛이 있어 태조에게 진상했다는 설, 다른 하나는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한효순의 손자며느리가 만들었다는 설이다. 무학대사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어리굴젓을 한효순의 손자며느리가 만들었다는 것은 무슨 소리일까?

한효순은 임금에게 더덕요리를 바쳐 총애를 받은 것으로 오명을 얻은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는 그렇지만 요리 솜씨만 놓고 보면 한효순 집안의 음식 맛이 그만큼 훌륭하다고 팔도에 소문이 났다. 그런 만큼 어리굴젓이 맛있는 이유를 한효순 집안의 음식 솜씨와 연결지어서 만든 말인데, 사실 여부를 떠나 예전 어리굴젓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유래설이다.   

굴회나 굴젓뿐만 아니라 인조는 목이 아플 때 굴국을 마시며 달랬고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한 여러 문헌엔 굴밥을 비롯해 굴죽과 굴김치 담그는 법이 자세히 적혀 있으니 우리 조상님들의 굴 사랑도 로마 황제나 프랑스 귀족 못지않게 지극했다.

우리 역시 굴의 효능에 대해 다양한 속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우리와 서양 속설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먼저 굴이 정력에 좋다지만, 따지고 보면 굴을 자양강장제로 여기는 속설은 서양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물론 동양에서도 굴의 강장 효과를 강조하긴 했다. 하지만 정력보다는 오히려 피부 미용에 방점을 찍었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과 같은 동양 의학서에서 하나같이 굴이 피부 미용에 좋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굴은 “먹으면 맛있고 몸에도 유익하다. 또한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얼굴색을 아름답게 한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 가운데서 가장 귀하다”고 적었는데 <본초강목>의 내용 역시 <동의보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속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배 타는 어부 딸은 얼굴이 까맣게 그을어도 굴 따는 어부 딸은 얼굴이 하얗다”고 했으니 똑같이 바닷가 강한 햇빛에 피부를 노출해도 굴 따는 처자 얼굴이 하얀 이유는 굴의 미용 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서양의 믿음처럼 굴이 정력에 좋은 식품일까, 아니면 동양의 속설처럼 피부 미용에 좋은 음식일까. 아니면 둘 다에 좋을까.

 


[윤덕노]  청보리미디어 대표 겸 음식문화평론가로 음식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며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사 베이징특파원과 사회부장, 부국장을 지냈으며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음식이 상식이다> 등 음식문화 관련 책을 다수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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