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사람 2019.12 P85 Food Essay]

▲ 누룽지 ⓒflickr

editor   윤동혁

어머니가 쌀누룽지튀김 두 봉지를 놓고 가셨다. 나의 사무실과 어머니가 사시는 집은 시내버스로 50분쯤 걸리는데 마침 교회에 같이 다니는 분이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함께 나왔다고 하셨다. 내년이면 아흔한 살, 그런데도 나보다 더 건강하시니 이런 복이 또 있겠는가. 

떠난 지 20분이나 됐을까. 어머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버스정류장 앉아 쉬는 의자에 가방을 놓고 왔으니 얼른 나가 보라는 거였다. 후다닥 달려 나갔지만… 의자 위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내가 드린 용돈이야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주민등록증 새로 발급받아야 하고, 서울만 가면 춘천이며 온양온천까지 무료로 갈 수 있는 복지카드 역시 농협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럴 땐 좀 무섭다. 좋지 않은 소식일 수 있으니까…. 어머니였다. 바짝 긴장하며 “무슨 일이 있는 거유?” 여쭈었는데 밝은 목소리가 햇살처럼 쏟아졌다. 

“나는 이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걸 믿게 되었다!”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교회 가시는 분이다. 이날도 새벽 예배 빠뜨리지 않으려고 아파트 현관 나서서 주차장 공터를 가로질러 가는데 놀이터 정자에 무슨 가방이 보이더란다.

누가 잊어버렸나… 무심히 다가가보니, 이럴 수가. 어머니의 가방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전날 어떤 분이 어머니의 가방을 습득해서 주민등록증을 보고 그곳까지 찾아가신 모양이다. 

“오늘 새벽에 갖다 놓은 게 틀림없어. 이슬 맞지 않아서 가방이 뽀송뽀송하더라니까.”

어머니는 이 모든 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앞으로는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하셨다. 내게는 쌀누룽지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인지라 어머니의 전화는 쌀누룽지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음식을 통해서도 ‘일본 들여다보기’를 하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일본 땅에서 누룽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누룽지를 물에 말아 먹는 ‘물눌은밥’도 없다. 오차즈케(お茶漬け)라는 요리가 있긴 하지만 그냥 밥에다 찻물을 부어놓은 음식이다. 대표적인 게 명란이나 연어와 함께 김 가루를 뿌려놓은 명란(연어) 오차즈케다.

누룽지는 일단 눌어붙어야 한다. 요즘은 전기밥솥 신세를 지지만 예전엔 전부 가마솥을 썼고, 그 쇠붙이와 곡식이 고열로 만나는 지점에서 지지직, 탁탁 소리를 내며 밥이 눌어붙었을 것이다. 그때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 누룽지에는 원적외선이 흠뻑 스며든다는데 그 진위 여부를 떠나 고소한 맛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없는 이 누룽지의 맛과 풍류를 살리려고 전라북도 장수에서 나오는 돌그릇을 끙끙대며 사 가는 한국음식점 주인들도 있다. 두 나라에서 삼겹살이 유행하자 돌판 수출도 많아졌다. 음식을 노릇노릇 눌어붙게 하는 기술은 소중해 보인다. 

그리고 하나 더, 다이어트 하시는 분들은 알고 계셔야 한다. 칼로리(kcal)! 이거 줄이기 위해 애쓰고 계시지 않는가. 그냥 밥 한 공기가 310kcal, 김밥 한 줄은 496kcal, 비빔밥 한 그릇은 536kcal다. 그럼 눌은밥 1인분은? 놀라지 마시라. 맨 앞 숫자가 그냥 1이다. 174kcal. 

날씨가 더 추워지면 어머니에게 쌀누룽지튀김(사진)을 배우겠노라 말씀드렸더니 “생각보다 복잡한데 그런 걸 뭐 하러 배우려고 하느냐”고 하시면서도 내심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으셨다. 남아돈다는 쌀 소비에도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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