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구리 료혜이의 '우동 한 그릇'에서 감동은 시작된다

이정주 고용개발원장
사회복지학박사

“공부해서 남주냐”, “돈 벌어서 남주냐”라는 오래 된 말이 있다. 가난한 농경시대를 벗어나 잘 살아보자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시작을 알리는 ‘구호’같은 말이었다. 그 덕인지 몰라도 자본의 집중과 개인의 성공을 부추기며 진행된 산업화는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한 폐해 역시 만만치 않다.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적으로는 공허해지고, 사회는 불안해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분명 풍요로운데 비교우위와 열위에 따라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국가가 최저생계를 보장하고 있는데도 가슴아픈 사건은 줄어들지 않는다. ‘성북 네 모녀’, ‘송파 세 모녀’, ‘부천 세 자녀’ 자살 사건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격차는 심화되고 차별과 갈등은 양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쯤되고 보니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이웃끼리 서로서로 돕는 것을 미덕으로 삼던 시간들이 고향처럼 그리워진다. 가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풍요를 지키며 함께 잘 사는 방법은 없는지, 그런 성숙한 사회를 바라게 된다. 공동체성 회복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 지방정부, 시민사회단체, 동네 주민이 힘을 합쳐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보호하는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은 바로 공동체성의 상징적인 이야기다. 우동집 ‘북해정<北海亭>’에 행색이 초라한 엄마와 두 아들이 들어와 우동 한 그릇만을 시키는 것을 보자 식당 주인이 이들 모르게 1.5인분을 제공했다는 이야기. 이로 인해 힘을 낸 아들이 성공한 후에 우동집을 찾아와 감사를 전하는 감동 스토리 안에 바로 '복지의 출발점'이 담겨져 있다.

동네 식당 주인의 선행이 한 가족을 살리고 건강한 사회인을 만들어 내는 것.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우동 한 그릇’의 미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 동네 식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사회를 위해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식당마다 계산대 옆에 놓여있는 작은 저금통은 우리 동네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중요한 재원이 되어 왔다.

어느새 ‘공부해서 남 주냐’, ‘돈 벌어서 남 주냐’는 사고는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사회를 위해 선용하자’는 의미 있는 가치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를 가장 앞서 실천하고 있는 수많은 동네 식당 대표에게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

사회공헌, 상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테다. ‘우동 한 그릇’에 녹아 있는 따뜻한 마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위대한 힘이자, 위대한 유산이다. 감히 말한다. 동네 식당은 지역사회 복지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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