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7-1 P.78 Consulting]

 

여러 외식업소를 방문하다 보면 가끔 ‘기업가’로 분류할 만한 업주를 만나기도 한다. 기업가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위험을 감수해가며 변화와 혁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이윤뿐 아니라 ‘플러스알파(+α)’의 가치를 추구한다. 규모가 큰 기업체 경영자라고 모두 기업가는 아니다. 독과점이나 특혜에 기대려는 경영자에게 기업가 정신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재벌들 가운데 참 기업가로 꼽을 만한 이름이 쉬 떠오르지 않는 까닭이다. ‘서경도락’ 성현석(41) 대표는 몇 차례의 부침에도 기업가 정신을 버리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섰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외환위기 물결에 학업 대신 사업 나서

유복한 중산층 가정이었던 성 대표의 집도 IMF 외환위기의 물결을 비켜가진 못했다. 공기업 간부였던 부친이 실직하자 군에서 제대한 성 대표는 학교 복학을 포기하고 청년사업가가 됐다.

본래 기계공학도였으나 정보기술(IT) 관련 사업체를 차렸다.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첨단 교구나 교육행정 프로그램을 제작해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마침 국가의 정책 지원에 힘입어 사업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차츰 덩치 큰 업체들이 계속 진입하자 경쟁이 치열해졌다. 어느 순간 군소업주였던 성 대표는 경쟁에서 밀려났다. 한때 큰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위기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무일푼이 됐다. 가족들이 이민 간 미국으로 건너가 재기를 노려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영어도 안 되고 미국에는 인맥도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여기서 다시 한 번 힘을 내보자고 맘을 추슬렀다.

사업 실패에서 건진 교훈은 딱 하나! ‘내 원천기술이 없으면 언젠가는 망한다’였다. 친구의 도움으로 50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이 돈으로 내가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가 뭘까’를 숙고한 끝에 선택한 분야가 외식업이었다. 6개월간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2009년 ‘장수가’라는 부대찌개 전문점을 여의도에 개업했다.

 

준비 안 된 성공은 실패의 전조일 뿐

성 대표가 외식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외식업 선호나 화려한 조리 경력 때문이 아니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찾은 결과였을 뿐이다. 부대찌개를 메뉴로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싼 점포를 찾다가 직장인 상권에 가게를 구하긴 했는데 뭘 팔아야 할지 몰랐다.

직장인이 좋아하는 메뉴를 찾아봤더니 찌개였다. 그런데 주변에 찌개 잘하는 집이 너무 많았다. 후발주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좀 더 세밀히 분석한 결과,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잘하는 곳은 흔했지만 부대찌개 잘하는 집이 보이지 않았다. 짧은 점심시간에 조리 오퍼레이션이 빠르고 손쉬운 것도 부대찌개의 강점이었다.

부대찌개를 주력 메뉴로 삼고 두루치기와 삼겹살을 파는 식당으로 가닥을 잡았다. 결과는 대성공! 그의 분석과 예측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창업 이듬해인 2010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2호점을 낸 것을 필두로 충무로, 선릉, 종로, 삼성동, 건대 앞 등 해마다 새 점포를 몇 개씩 개점했다. 새로 문을 여는 점포마다 적지 않은 매출을 올렸다. 특히 2014년에는 서울 시내 여러 곳에 소나기처럼 개점을 했다.

그런데 2015년부터 갑자기 거의 전 점포에서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당황했다. 일시적 현상이려니 했는데 점점 악화됐다. ‘장수가’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손에 쥔 돈은 없었다. 돈을 버는 대로 새로운 점포 개설에 투자하느라 자금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원인을 성 대표는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인력 운용과 교육의 실패. 검증되지 않은 인력을 급하게 투입했고 인력에 대한 재교육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상권에 최적화한 메뉴 설정 실패. 점포마다 조금씩 상권 특성이 다른데 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인 메뉴를 투입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가치소비’가 뚜렷해진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점. 불경기 지속으로 소비자는 깐깐해졌는데 이런 흐름을 놓쳤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몰랐다. 평소 인품이나 경영 능력이 탁월해 존경했던 선배인 대형 외식업체 대표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가 점포들을 인수해줄 것을 내심 바라면서···. 선배는 두 가지를 언급했다.

성 대표에게 일정 지분을 보장해주고 자신이 경영을 맡아 정상화하겠다는 것, 또 하나는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를 소개해줄 테니 상담을 받아 스스로 재기해보라는 것. 이 둘 중 택일하라는 것이었다.

기대했던 대답을 듣고 안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했다. 지분을 받고 편안히 안주하고 싶었지만 다음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사업가 본능이 불끈 솟았던 것이다. 호의를 베풀어준 선배에겐 고마웠지만 다음 날 바로 김 기획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서경도락' 성현석 대표

‘평양식 불고기와 냉면’ 포지셔닝 구축

평소 컨설팅 성과에 회의적이었고 컨설턴트들을 불신했던 터라, 성 대표는 처음 대면하는 김 기획자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면담 10분 만에 ‘내 음식 무오류’에 대한 신앙이 깨졌다. 식당 주인들 대부분이 ‘내 음식은 맛있다!’고 여긴다. 성 대표도 마찬가지였던 것. 김 기획자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장수가’ 음식 수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아울러 김 기획자가 오랜 세월 축적한 빅데이터에 신뢰감이 생겼다.

김 기획자는 여러 점포 가운데 규모가 큰 편이고 매출 감소폭도 커서 가장 대책이 시급한 마포점부터 개선하기로 했다. ‘장수가’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둔 점포들이어서 식당의 핵심인 ‘음식’이 상대적으로 뒷전이었다. 김 기획자는 이 점을 중시하고 음식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우선임을 성 대표에게 강조했다. 공감한 성 대표는 바로 김 기획자와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땜질 처방으로는 근본적인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데 인식이 같았다. 단기간 매출 향상이 아니라 오래가는 강력한 외식업 브랜드를 구축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벤치마킹을 다니면서 성 대표는 두 가지 생각을 굳혔다. 하나는 ‘제대로 된 고깃집을 해보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은 원육을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마포는 사무실 밀집지역이자 주거지가 혼재된 상권이다. ‘장수가’가 위치한 곳은 주거지 특성이 더 큰 곳이었다. 생고기보다 양념육이 먹히는 상권이었던 것. 이 점에 착안한 김 기획자는 불고기를 떠올렸다.

최종적으로 ‘수준 높은 전통 불고기와 평양냉면 전문점’이라는 점포 콘셉트를 도출했다. 2016년 7월, 옥호부터 평양의 고려시대 별칭이었던 ‘서경’을 넣어 ‘서경도락’으로 지었다.

‘서경도락’ 대표 메뉴인 불고기는 스키야키 흔적이 남은 서울식 불고기가 아니라 전통 평양식 직화 불고기로 업그레이드했다. 불고기 원육은 한우를 사용했다. 광양 불고기나 언양 불고기 못지않은 평양식 불고기가 이렇게 탄생했다.

불고기로 유명한 인근 마포의 고깃집보다 훨씬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짧은 시간 고온에 지지다시피 굽는 방식은 육즙을 온전하게 보존한다. 경쟁 고깃집의 바삭한 불고기에 비해 평가가 후할 수밖에 없다.

예전 평양의 음식문화가 그랬듯 최고의 불고기는 최고의 냉면과 짝패를 이룬다. 그래서 조리 전문가를 동원해 최고 수준의 평양냉면도 개발했다. 각종 반찬류를 정비하고 돼지갈비 맛도 잡았다. 음식과 시스템 전환이 일단락되자 점포의 콘텐츠를 정리해 각종 매체에 전파했다. 차츰 소문이 나자 ‘서경도락’의 불고기는 2016년 11월 KBS2 TV ‘생생정보통’에 방영되기도 했다.

 

매출 획기적으로 증가,

성 대표의 꿈은 수십 년 지속될 외식업소로 키우는 것

성 대표와 김 기획자의 의도대로 ‘서경도락’은 ‘최고의 평양식 불고기와 냉면 전문점’이라는 포지셔닝을 확고히 굳혔다. 고객들의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편이고 사회 저명인사들의 방문도 빈번하다.

과거 ‘장수가’ 전성기 때 최고 매출액은 월 9000만 원대였다. 그러던 것이 차츰 떨어져 점포 개선작업 직전에는 3000만 원 선까지 밀렸다. 새 단장을 마친 ‘서경도락’ 첫 달 매출액이 공교롭게도 9000만 원이었다.

추석 명절이 낀 9월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매출액은 월 1억 원을 돌파하고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막상 성 대표는 지금 당장의 매출 증대보다 몇십 년 후 누군가에게 노스탤지어를 심어줄 브랜드 가치 높은 외식업소로 키우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김 기획자는 2016년 한 해 동안의 컨설팅 사례 가운데 ‘서경도락’을 ‘최고의 작품’으로 주저 없이 꼽았다. 향후 점심식사 메뉴만 보강한다면 서울 최고의 고품격 평양식 불고기·냉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나머지 세 개의 점포들도 경영 개선 활동을 통해 차츰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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