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지면으로 떠나는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 사람 2017-3 P.62 Benchmarking Tour]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 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를 바란다.

 

editor. 황광해 / 사진 제공. 황광해

 

벤치마킹 투어가 유행이다. 단호하게 말한다. 벤치마킹 하지 마라. 남이 잘하는 것을 참고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남의 것을 보고 ‘나의 것’을 찾으라는 뜻이다. 남이 잘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남의 것을 따라 하면 영원한 2등이다. 2등은 망한다.

외식업체도 마찬가지다. 남이 하는 걸, “이게 요즘 트렌드야”, “요즘 유행이야”, “내가 아는 식당 사장은 이걸 해서 돈을 벌었대”라고 따라 하면 백전백패 망한다. 내가 알면 남도 다 안다. 잘된다고 따라 하면 레드오션(Red Ocean)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한 다음,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

 

“따라 하지 마라, 내 것을 찾아라”

벤치마킹 투어를 다녀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이건 우리 가게에 그대로 옮기면 좋겠다”라는 말이다. 세상에 그런 메뉴는 없다. 어느 가게나 대박 메뉴는 있을 수 있지만, 남을 따라 해서 큰 성공을 거둘 아이템은 없다. 대박 메뉴, 대박 아이템은 그 가게의 상황에 맞는 것이다. 내 가게에 맞는 대박 아이템은 따로 있다.

오래된 가게의 아이템은 더 따라 하기 힘들다. 50년 된 노포의 아이템을 따라 한다고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50년 전의 시대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국민소득도 달랐고 소비 패턴도 달랐다. 50년 전에 시작한 가게는 그 시대 상황에 맞춰서 창업했다. 유명해지고 나면 웬만큼 실수하지 않으면 살아남고 노포, 대박 맛집이 된다. 물론 노포들이 손 묶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늘 새롭게 바꾸려고 노력한다.

아이템, 메뉴를 따라 할 일이 아니다. 대박 메뉴, 대박 아이템을 보고 “내 가게에 맞는 아이템은 뭘까?”를 고민해야 한다. 메뉴, 아이템이 아니라 그들의 정성과 정신을 봐야 한다.

늘 주목받는 아이템이 있다. 소박한 메뉴다. 기본에 충실한 메뉴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소박한 메뉴를 뒤돌아보라

서울 청계천 ‘강산옥’

“콩비지탕에서는 콩의 냄새가 나야 한다. 기본으로, 소박한 음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 '강산옥' 콩비지 / 이하 사진 = 황광해 제공

청계천 변의 ‘강산옥’. 1958년 개업했다. 정성을 다해서 콩비지 탕을 내놓는다. 소박한 음식이다. 대단한 맛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수수한 콩비지 맛이다. 그뿐이다. 반찬도 소박하다. 무생채가 있고 오이냉국 정도를 내놓는다. 음식을 만져본 사람은 “이 정도는 나도 한다”고 자만한다. 그럴까?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든다. 좁은 공간이지만 테이크아웃 포장도 해준다. 손님들이 꾸준하게 찾는다. 콩비지를 이야기하려면 이 집은 한 번쯤 들러야 한다고 믿는다. 왜일까?

소박하고 단순하다. 만드는 과정은 힘들다. 하지만 복잡하지는 않다. 원래 주변 상인들이 주 고객이었다. 가난한 시절 영양식이었다. 먹고살 만해지자 영양식이 아니라 건강식이 되었다.

소득이 올라가면 화려한 음식보다는 소박한 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이 각광받는다. 대부분의 조리사들은 배운 레시피를 고집한다. 양념이 과하고 화려한 맛이다. 식품산업의 발달로 누구나 ‘맛있는 음식’은 쉽게 만든다. 그러나 소박한 음식, 식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은 오히려 만들기가 쉽지 않다.

기본으로, 소박한 음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콩비지탕에서는 콩의 냄새가 나야 한다. 단맛, 감칠맛이 지나친 음식은 이제 소비자들이 피한다. 벤치마킹을 한다면 이 가게의 소박한 음식, 음식을 만드는 단순하면서도 정성 어린 부분을 봐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은 일을 크게 보라

전북 익산 ‘일해옥’

“작은 부분, 소박한 과정이라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하라. 그것이 바로 대박의 출발점이다.”

▲ '일해옥' 콩나물국밥

별것 아닌 그저 평범한 콩나물국밥이다. 그런데 숱한 콩나물국밥집 중 이 집에는 늘 단골손님이 모인다. 인근 손님도 많지만 외지에서도 많이 찾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콩나물국밥을 끓여내는 과정의 한두 부분이 독특하다.

멸치 육수에 사용하는 멸치 양이 대단하다. 상품의 멸치를 많이 사용한다. 여타 가게에서 사용하는 멸치 양의 몇 배 정도를 사용한다. 국물이 진하다. 펄펄 끓는 솥 위에서는 고추가 마르고 있다. 국산, 수입산 말이 많은 것이 고추다. 국산 고추를 끊임없이 솥 위 알루미늄 쟁반에서 말리고 있다. 손님들은 고추 말리는 모습을 보고 이 집의 음식에 대해서 안심한다. 소박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마케팅 기법이다.

마케팅은 속이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소박하지만 제대로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소비자는 감동한다. 멸치 육수를 제대로 내는 모습만 보아도 성공적이다. 고추 말리는 모습을 본 소비자는 이 집의 음식, 정성을 믿는다. 감동하면 단골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은 부분, 소박한 과정이라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하는 것이 바로 대박의 출발점이다.

 

한식은 인스턴트 음식이다?

서울 상암동 ‘차림’

“음식은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독대와 바람 부는 옥외에서 음식의 절반은 완성된다.”

▲ '차림' 한식

지인의 소개로 서울 상암동에 갔다. 유명 방송인들이 자주 찾는 집이라고 소개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고 갔다. 기대에 어긋나게(?) 음식이 좋았다.

이른바 ‘1기 밥상’이었다. 반찬이 하나 있고 밥과 국 한 그릇과 밑반찬 네댓 가지가 주르륵 깔렸다. 점심에는 비빔밥, 코다리찜정식, 갈비찜정식이 있다. 같은 반찬에 코다리찜, 갈비찜을 더한 것이다. 가격은 1만3000~1만8000원. 저녁에도 코다리찜이나 갈비찜 등이 술안주로 등장한다. 좋은 술과 더불어 잘 어울리는 메뉴다.

소비자들은 ‘집밥’을 그리워한다. 단맛이 과하거나 만들기 쉬운 것, 각종 양념이 강한 것은 집밥이 아니다. 집밥은 소박하다. 그러나 깊은 장맛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김치나 장아찌류가 깔려 있어야 한다. 이런 밑반찬은 외부에서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라야 한다.

조리사들 중에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주방이 아니라 장독대와 바람 부는 옥외에서 식재료를 만들 때 음식의 절반은 완성된다. 주방에서 음식을 잘 만드는 것은 공부하지 않고 시험장에서 시험 잘 치르는 것과 같다.

한식의 맛은 장(醬)에 달려 있다. 소박한 음식도 제대로 된 장과 좋은 식재료에서 시작된다. 조리사는 좋은 식재료를 판단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깊은 맛을 내는 단순한 음식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누구나 다 해내는, 그러나 나만 할 수 있는 메뉴

강원 원주 ‘산골손두부칼국수’

“대단한 메뉴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내놓지 못한다.”

▲ '산골손두부칼국수' 감자전

미리 밝힌다. 따라 하기 힘들다. 대단한 메뉴도 아니다. 감자전이다. 강원도 혹은 깊은 산골 출신들은 누구나 감자전은 만들 수 있다. 굳이 산골 출신이 아니라도 감자전은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게 가게로 나오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미리 만들어뒀다가 데워주면 간단하다. 반죽을 미리 하거나 미리 감자를 갈아두면 간단하다. 문제는 주문받은 후 감자를 갈아서 즉석으로 내지 않으면 손님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감자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내놓지 못하는 메뉴가 된 이유다.

‘산골손두부칼국수’에서 들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아무리 바쁜 점심시간이라도 바로 감자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감자전 부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 주방에 있다. 밥상을 차려내면서 시간 맞춰서 감자전을 뒤집고 익힌다. 이게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가격은 꼭 이 가게를 따를 일은 아니다. 얼마쯤 가격이 높아도 된다. 역시 문제는 즉석, 인스턴트로 감자전을 부쳐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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