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지면으로 떠나는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 사람 2017-4 P.48 Benchmarking Tour]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 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를 바란다.

 

editor 황광해 / 사진 제공 황광해

 

‘숨은 1인치’라는 표현이 있다. 텔레비전 광고 문구다. 좌우 혹은 아래위로 텔레비전 화면이 1인치 정도 더 크다면 숨겨진, 핵심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1인치’에 대단한 내용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불가(佛家)에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표현이 있다. 무지 높은 곳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는 뜻이다. 대다수는 높은 곳에서의 공포심 때문에 한 걸음 더 내딛기는커녕 장대를 잡고 버티기도 힘들다.

장황하게 설명했다. 간단한 이야기다. 외식업체에서 대박을 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내딛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메뉴든, 서비스든, 인테리어든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 필요하다.

 

양구 ‘양구재래식손두부’

‘모두부뚝배기’와 ‘두부짜글이’

▲ 양구 '양구재래식손두부' / 이하 사진 = 황광해 제공

두부 집은 많다. 전국 국도, 지방도를 다니다 보면 순두부, 손두부, 시골두부는 무수히 많다. 필자는 음식 공부를 다니는 사람이다. 시골에서 두부집을 만나면 늘 한 번은 더 쳐다본다. 역시 시골두부, 손두부, 순두부, 국산 콩 100% 등의 문구들이다. 더 이상의 감흥은 없다. 시골에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손두부를 만드는 경우는 이제 많다. 손두부라고 하지만 예전 방식의 손두부는 아니다. 상당 부분 기계화되었다. 비슷비슷하다.

‘양구재래식손두부’는 ‘모두부뚝배기’로 유명했다. 순두부뚝배기는 많은데 모두부뚝배기는 드물다. 모두부를 큰 뚝배기에 넣고 그대로 푹 끓인 것이다. 육수는 담백하다. 그저 먹을 만하다. 대단한 맛도 아니고 특별한 맛도 아니다. 육수가 담백하니 두부 맛이 살아난다. 순두부도 장점이 많지만 모두부도 장점이 많다. 두부가 단단해봐야 얼마나 단단하랴? 모두부뚝배기의 모두부는 단단한 두부의 장점만 살고, 딱딱한 단점은 없다. 순하게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음식이다.

얼마 전 강원도 인제, 양구 일대 두부 전문점의 메뉴 중 ‘두부짜글이’라는 음식이 TV에 소개되었다. 두부전골보다는 물기가 적고, 두부조림보다는 물기가 많은 음식이다. 이름이 특이할 뿐 별다른 음식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숨어 있는 1인치’에 소비자들이 반응한다는 점이다.

모두부뚝배기든 두부짜글이든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물론 서울 등 대도시의 음식점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아이템이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숨어 있는 1인치’를 찾는 노력은 필요하다. 내 가게, 내 공간의 ‘숨어 있는 1인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천 ‘통명식당전통묵집’

뭐? 묵을 볶아 먹는다고?

▲ 예천 '통명식당전통묵집'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다. 태백산맥과 가까운 경북 북부지역의 음식이다. 특히 경북 예천에서 널리 발전했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메밀묵, 신 김치, 돼지고기 등을 냄비 등에 넣고 볶아 먹는 음식이다. 먼저 돼지고기를 볶은 다음 신 김치를 넣고 볶는다. 마지막에 부드러운 묵을 넣고 볶는다. 아마 오래전에는 도토리묵을 사용했을 것이다. 도토리가 귀해지면서 메밀묵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메밀묵은 구황식품에서 건강식품으로 변한 지 오래다. 묵이 널리 선택받지 않는 것은 묵의 무미(無味) 때문이다. 한마디로 맛이 없다. 태평추는 별맛이 없는 묵에 신 김치와 돼지고기의 감칠맛, 단맛을 더한 것이다. 불에 볶으면 고기와 김치는 강력한 맛을 낸다.

‘통명식당전통묵집’은 작은 시골 읍내 외곽지에 있는 허름한 가게다. 이 집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묵의 ‘숨어 있는 1인치’는 바로 볶아 먹는다는 것이다. 묵 이외의 다른 식재료도 돼지고기, 신 김치를 넣으면 맛이 강해질 것이다. 내 가게, 나의 음식에 어울릴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내자는 것이다.

 

해남 ‘성내식당’

김국과 김 장아찌

▲ 해남 '성내식당'

외식업체에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밑반찬 아이템으로 늘 추천하는 것이다.

김은 맛있다. 맛김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잘 구운 김만큼 맛있는 반찬도 드물다. 김에 쪽파를 넣고 무친 음식도 만만치 않게 맛있다. 호남의 식당에서 자주 등장하는 생김도 맛있다. 생김에 밥을 싸고 간장에만 찍어 먹어도 대단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세상에 김이 들어간 음식치고 맛없는 것은 없다. 오죽하면 김밥이 외식업체의 주요 아이템이 될까?

호남의 김국. 만만치 않게 맛있다. 여러 식당에서 내놓는다. 엉터리 김만 사용하지 않으면 밥 한 그릇 말아도 뚝딱 먹을 정도로 맛있다. 그저 김만 푼 것이라면 맛이 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적당히 조미한 국물에 김을 풀어놓으면 대책 없이 맛있다. 호남 출신들에게는 소울 푸드 같은 느낌을 준다. 가격이 낮은 식당에서도 밑반찬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김국을 국물로, 김 장아찌를 밑반찬으로 내놓는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김을 이용한 음식은 많지만 김국, 김 장아찌는 김의 ‘숨어 있는 1인치’다. 어릴 적부터 먹었던 사람들은 소울 푸드로 생각하고, 타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음식이다. 그런데 맛있다.

 

수안보 ‘영화식당’

반찬 그릇에 이름을 쓰다

▲ 수안보 '영화식당'

대단한 음식이나 별다른 서비스가 아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반찬 그릇에 이름을 썼다. 머위, 취나물, 다래 순, 고사리 등등의 나물 반찬 이름을 그릇에 적었다.

산나물, 들나물은 볼 때마다 헛갈린다. 무슨 나물인지 물어볼 경우가 잦다. 외식업체에서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아마 그래서 이름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마케팅이 된다. 가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왜, 그 반찬 그릇에 이름 쓴 집?”이라고 묻는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기억한다.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릇에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케팅에는 도움이 된다. 그대로 하라는 것도 아니다. 얼마쯤 바꿀 수 있는 방식이다.

고깃집에서 저울을 두는 경우가 있다. 벽면에 걸린 디지털 기기로 손님은 자신이 먹는 고기의 양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있다.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 속이지 않는다,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반찬 그릇에 이름 쓰는 것이나 가게 벽면에 중량을 보여주는 디지털 기기를 다는 것이 모두 같은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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